'정상(正常)'은 정말 정상인가?
의학기술과 지식이 크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만성 질환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건강수명(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평균수명이 1990년 75.6세에서 2021년 77.1세로 늘어난 반면, 건강수명은 64.8세에서 64.4세로 되레 줄었습니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10.8년에서 12.7년으로 늘었습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위의 장수국가인 한국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평균수명 83.3세, 건강수명 73.1세(2019년 기준)로 대부분의 한국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이상 병마에 시달립니다. 신체질환 만이 아닙니다. 신경쇠약, 우울증,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고, 마약중독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캐나다의 정신건강의학자 가보 마테가 최근 쓴 책 <정상이라는 환상(원제 The Myth of Normal), 한빛비즈 출간>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건강에 신경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왜 모두 건강하지 않은 걸까?” 그는 물질주의가 왜곡한 ‘정상(正常)’ 개념을 근본원인으로 꼽습니다. “현대사회의 정상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매우 비정상적인 욕구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아주 해롭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가 규정해놓은 ‘정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자신의 본연을 감추고 애써 밝게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계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눠 질병 코드명으로 무작정 규정해버리고, 사회는 정상이라는 어긋난 프레임에 우리 모두를 옭아매고 있다.”
2000여 명의 여성을 10년 이상 추적 조사한 결과가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배우자와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감정을 속으로 삭인 여성들이 드러낸 여성보다 네 배 이상 사망 확률이 높았다”. 직장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권위적인 상사 밑에서 일하는 여성이 화를 억누르면 심장병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답니다. “분노를 그대로 표현하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분위기에서 이는 당연한 적응반응이다.”
스트레스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염증입니다. “내가 본 환자들에게서 이 둘의 연관성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염증은 자가면역성 질환부터 심장 및 뇌의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까지 질병과 관련해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천식도 일으킵니다. 미국 흑인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천식 발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문제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들 여성에게 발생하는 염증과 기도 협착은 개인적 질병인가, 아니면 사회적 문제가 표출된 것인가?”
알콜을 넘어 각종 마약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독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독을 ‘잘못된 선택’으로 보는 시각은 솔직히 말하면 ‘전부 염병할 네 잘못이야’라고 꾸짖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은 끔찍할 정도로 효과가 없을뿐더러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어떤 의미로든 중독자가 되기로 ‘선택’했다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마테는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리학자 야노시 셀리에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터지거나 불만으로 꽉 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면 ‘정상’이라는 착각에서 “기꺼이, 아니 미친 듯이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입니다.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그리고 정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의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이학영 드림
'정상(正常)'은 정말 정상인가?
의학기술과 지식이 크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만성 질환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건강수명(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평균수명이 1990년 75.6세에서 2021년 77.1세로 늘어난 반면, 건강수명은 64.8세에서 64.4세로 되레 줄었습니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10.8년에서 12.7년으로 늘었습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위의 장수국가인 한국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평균수명 83.3세, 건강수명 73.1세(2019년 기준)로 대부분의 한국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이상 병마에 시달립니다. 신체질환 만이 아닙니다. 신경쇠약, 우울증,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고, 마약중독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캐나다의 정신건강의학자 가보 마테가 최근 쓴 책 <정상이라는 환상(원제 The Myth of Normal), 한빛비즈 출간>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건강에 신경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왜 모두 건강하지 않은 걸까?” 그는 물질주의가 왜곡한 ‘정상(正常)’ 개념을 근본원인으로 꼽습니다. “현대사회의 정상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매우 비정상적인 욕구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아주 해롭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가 규정해놓은 ‘정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자신의 본연을 감추고 애써 밝게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계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눠 질병 코드명으로 무작정 규정해버리고, 사회는 정상이라는 어긋난 프레임에 우리 모두를 옭아매고 있다.”
2000여 명의 여성을 10년 이상 추적 조사한 결과가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배우자와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감정을 속으로 삭인 여성들이 드러낸 여성보다 네 배 이상 사망 확률이 높았다”. 직장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권위적인 상사 밑에서 일하는 여성이 화를 억누르면 심장병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답니다. “분노를 그대로 표현하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분위기에서 이는 당연한 적응반응이다.”
스트레스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염증입니다. “내가 본 환자들에게서 이 둘의 연관성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염증은 자가면역성 질환부터 심장 및 뇌의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까지 질병과 관련해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천식도 일으킵니다. 미국 흑인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천식 발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문제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들 여성에게 발생하는 염증과 기도 협착은 개인적 질병인가, 아니면 사회적 문제가 표출된 것인가?”
알콜을 넘어 각종 마약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독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독을 ‘잘못된 선택’으로 보는 시각은 솔직히 말하면 ‘전부 염병할 네 잘못이야’라고 꾸짖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은 끔찍할 정도로 효과가 없을뿐더러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어떤 의미로든 중독자가 되기로 ‘선택’했다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마테는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리학자 야노시 셀리에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터지거나 불만으로 꽉 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면 ‘정상’이라는 착각에서 “기꺼이, 아니 미친 듯이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입니다.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그리고 정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의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이학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