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노동조합(노조)’라고 불리는 8개 노조가 얼마 전 연합체 설립 발대식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계는 대체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라는 상급 단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MZ노조 연합체의 설립은 곧 노동 정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근로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으니 고무적인 일입니다.
MZ노조의 설립 취지는 분명합니다. 기존 노동운동과의 결별입니다. 기존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있고, 세대를 아우르지 못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듯, 일괄적인 정규직화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젊은 근로자들에게 역차별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규직화된 비정규직에게 차등적인 대우를 제공하고, 기존 정규직에게는 일괄 채용 등 기존 노동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그런 노동구조는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 맞는 옷일까요?
MZ노조가 말하는 것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MZ노조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와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노동조합의 설립연도는 2021년으로 공교롭게 일치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에 참여한 8개 노조의 설립연도는 모두 2019~2022년에 분포돼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기간이 2017년 5월 10일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임을 미뤄볼 때, MZ노조의 결성에는 문재인 정부 초반 추진했던 노동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3월 무기계약직1,288명 전원을 일반 직원과 유사한 호봉체계에 편입되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근속기간이 3년 이상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신입직원과 동등한 7급을 부여했죠. 3년 미만인 경우 한 급수 아래인 ‘7급보’ 직위를 부여하고 시험을 봐 선별적으로 7급으로 승급시켰는데, 감사원에 따르면 합격률은 94%에 달했습니다. 2018년에 서울교통공사에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던 셈입니다. 반면 2017년 신입사원 공개채용 경쟁률은 55.7대1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시되던 것들에 대해서도 MZ노조는 의문을 던집니다. 민주노총이 왜 국가보안법 폐지 문화제를 개최하는지, 또 매년 개최하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한다고 내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왜 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의 참여를 독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단체교섭 과정에서 ‘정년 퇴임 후 촉탁직 기간 연장’과 ‘전체 근로자 상여금 삭감’이 왜 거래 대상이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50대 근로자의 생계를 위한 것인데, 왜 20~30대 근로자가 상여금이 깎여야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MZ노조가 지적하는 문제들은 ‘19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운동이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설립의 물꼬를 텄던 노동자대투쟁은 1987년 벌어졌는데, 이때의 경제성장률은 12.7%에 달합니다. 고도성장기에는 기업이 일할 근로자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많이 뽑고, 평가하지 않으며, 오래 일할수록 높은 임금을 주었죠. 1987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통일운동도 이뤄졌으니 노동운동과 그 뿌리는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1987년의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된 노동운동의 관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1987년대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구조는 변했습니다. 기업은 더 이상고용안정을 약속해주지 않습니다. MZ노조의 M이 밀레니얼(Millennial)의 약자임을 고려해보면, 이들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걸었지만, 당장 내일이 불안한 이들에게는 현재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 제도와 노동운동이 시대에 맞게 변했다면 MZ노조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경우 이전부터 근로자 평가가 체계적이었다면 공정성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테죠. ‘진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은 분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정치 운동 역시 근로자의 처우 및 고용안정을 목표로 할 때 여론 형성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 지도부 역시 세대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개편이 필요합니다.
MZ노조가 말하지 않는 것들
다만, MZ노조가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경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 지필고사 중심의 채용 방식 역시 경력과 직무 적합성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호봉제의 개혁과 공정한 성과평가에 대해서는 문제를 지적하지만 ‘성과평가 기준의 공개’ 등 투명성 확보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합니다. 공기업 청년 근로자들이 단순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거나, 본사와는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하여 이에 고용되는 방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MZ노조의 운동이 ‘신입사원 공채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다르게 입사한 사람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야 한다’는 식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사회적 반향을 얻었던 사회개혁 구호는 대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성공한 노동개혁이 고용유연화와 사회안전망 강화 정책을 함께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MZ노조의 운동이 대한민국 경제에 맞는 노동제도를 구성하는 데까지 이르려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고용, 노동제도는 무엇일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시 채용, 다면평가, 성과평가, 연봉제, 성과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와 같이 금기로 여겨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도전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의 사회가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필요합니다.
MZ노조의 길은 험난합니다. 노조 조합원 254만 명 중 207만 명(81.5%)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장기적 생존은 얼마나 많은 조합원을 확보하고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에 조합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대노총의 견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MZ노조의 성공은 결국 스스로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만든 이유도 양대노총과 유사한 연합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크겠죠. MZ노조가 오랫동안 더 다양한 근로자들의 목소리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에 대해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본격적인 MZ노조 운동이 3년차를 맞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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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노동조합(노조)’라고 불리는 8개 노조가 얼마 전 연합체 설립 발대식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계는 대체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라는 상급 단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MZ노조 연합체의 설립은 곧 노동 정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근로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으니 고무적인 일입니다.
MZ노조의 설립 취지는 분명합니다. 기존 노동운동과의 결별입니다. 기존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있고, 세대를 아우르지 못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듯, 일괄적인 정규직화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젊은 근로자들에게 역차별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규직화된 비정규직에게 차등적인 대우를 제공하고, 기존 정규직에게는 일괄 채용 등 기존 노동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그런 노동구조는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 맞는 옷일까요?
MZ노조가 말하는 것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MZ노조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와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노동조합의 설립연도는 2021년으로 공교롭게 일치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에 참여한 8개 노조의 설립연도는 모두 2019~2022년에 분포돼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기간이 2017년 5월 10일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임을 미뤄볼 때, MZ노조의 결성에는 문재인 정부 초반 추진했던 노동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3월 무기계약직1,288명 전원을 일반 직원과 유사한 호봉체계에 편입되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근속기간이 3년 이상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신입직원과 동등한 7급을 부여했죠. 3년 미만인 경우 한 급수 아래인 ‘7급보’ 직위를 부여하고 시험을 봐 선별적으로 7급으로 승급시켰는데, 감사원에 따르면 합격률은 94%에 달했습니다. 2018년에 서울교통공사에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던 셈입니다. 반면 2017년 신입사원 공개채용 경쟁률은 55.7대1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시되던 것들에 대해서도 MZ노조는 의문을 던집니다. 민주노총이 왜 국가보안법 폐지 문화제를 개최하는지, 또 매년 개최하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한다고 내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왜 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의 참여를 독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단체교섭 과정에서 ‘정년 퇴임 후 촉탁직 기간 연장’과 ‘전체 근로자 상여금 삭감’이 왜 거래 대상이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50대 근로자의 생계를 위한 것인데, 왜 20~30대 근로자가 상여금이 깎여야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MZ노조가 지적하는 문제들은 ‘19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운동이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설립의 물꼬를 텄던 노동자대투쟁은 1987년 벌어졌는데, 이때의 경제성장률은 12.7%에 달합니다. 고도성장기에는 기업이 일할 근로자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많이 뽑고, 평가하지 않으며, 오래 일할수록 높은 임금을 주었죠. 1987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통일운동도 이뤄졌으니 노동운동과 그 뿌리는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1987년의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된 노동운동의 관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1987년대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구조는 변했습니다. 기업은 더 이상고용안정을 약속해주지 않습니다. MZ노조의 M이 밀레니얼(Millennial)의 약자임을 고려해보면, 이들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걸었지만, 당장 내일이 불안한 이들에게는 현재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 제도와 노동운동이 시대에 맞게 변했다면 MZ노조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경우 이전부터 근로자 평가가 체계적이었다면 공정성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테죠. ‘진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은 분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정치 운동 역시 근로자의 처우 및 고용안정을 목표로 할 때 여론 형성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 지도부 역시 세대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개편이 필요합니다.
MZ노조가 말하지 않는 것들
다만, MZ노조가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경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 지필고사 중심의 채용 방식 역시 경력과 직무 적합성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호봉제의 개혁과 공정한 성과평가에 대해서는 문제를 지적하지만 ‘성과평가 기준의 공개’ 등 투명성 확보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합니다. 공기업 청년 근로자들이 단순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거나, 본사와는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하여 이에 고용되는 방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MZ노조의 운동이 ‘신입사원 공채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다르게 입사한 사람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야 한다’는 식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사회적 반향을 얻었던 사회개혁 구호는 대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성공한 노동개혁이 고용유연화와 사회안전망 강화 정책을 함께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MZ노조의 운동이 대한민국 경제에 맞는 노동제도를 구성하는 데까지 이르려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고용, 노동제도는 무엇일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시 채용, 다면평가, 성과평가, 연봉제, 성과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와 같이 금기로 여겨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도전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의 사회가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필요합니다.
MZ노조의 길은 험난합니다. 노조 조합원 254만 명 중 207만 명(81.5%)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장기적 생존은 얼마나 많은 조합원을 확보하고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에 조합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대노총의 견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MZ노조의 성공은 결국 스스로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만든 이유도 양대노총과 유사한 연합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크겠죠. MZ노조가 오랫동안 더 다양한 근로자들의 목소리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에 대해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본격적인 MZ노조 운동이 3년차를 맞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위 텍스트를 누르면 해당 에디터의 프로필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