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현장은 신입사원들의 스펙과 실제 역량의 불일치로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됐다. 국회는 어떨까? 국민도 국회의원들의 스펙과 실제 역량의 불일치로 스트레스가 대단히 심하다. 공약과 실행의 불일치, 말과 행동의 불일치. 어제와 오늘의 불일치. 국민을 위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온갖 불일치라도 좀 해소되면 유권자는 얼마나 투표하기가 쉬워질까?
지난 4월 초부터 약 2주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혁신공천을 표방한 공병호 위원장 체제에서였다. 국민 앞에 내걸은 기치가 괜찮았고 흥행에도 성공해 오백 수십여 명이 지원하는 바람에 공천심사 현장은 무척 바빴다. 고차원적 상념에 빠져있을 새가 없었다. 공천위원장이 정립한 심사기준에 충실하면서, 순간적 판단에 실수해서는 안되기에 내내 긴장을 유지했다. 심사기준 중 하나는 특히 ‘전투력’이었다. 전투력은 국회에서 세 싸움에 밀리지 않고 잘 싸울 수 있는 능력이다. 국회의원은 잘못된 입안을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논평은 언론인이나 사회단체인의 일이다. 국회의원은 우리가 더 우선시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 싸워서 잘못된 입법은 저지하고 올바른 입법은 관철시켜야 한다. 다른 능력이 비슷하면 전투력이 더 나은 사람에게 점수를 줄 필요가 있다. 안그래도 모정당의 전투력 부족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전투력은 서류상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운 능력이다. 무엇을 보고 평가할 것인가? 이제부터는 심사위원 개인별 경험과 지혜, 통찰력이 십분 발휘되고 종합되어야 하는 영역인데, 나는 ‘몸’ ‘말’ ‘일’ 세 가지 키워드에 집중했다.
첫째, 기본적으로 ‘몸의 정치’에서 심각한 결점이 없는지 관찰했다.
‘사람’이기에, 일단 후보자의 외양과 행동거지가 상대방에게 지고들어가는 인상을 풍겨서는 안될 것이다. 위엄을 풍길 필요까진 없어도, 만만하게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 쉽사리 폭력적인 난장판이 되곤 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질낮은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뒤로 숨어서 묻어갈 것 같은 인물보다는 앞장서서 문제를 돌파하는 파워풀한 존재감과 행동력이 있어보여야 하지 않을까? 몸가짐과 자세, 눈빛과 안색, 인상과 표정, 옷차림과 매무새, 그리고 목소리로 완성되는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완숙함에 액티브함까지 느낄 수 있는지를 관찰했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후보자의 심리 상태와 위기대처 능력을 상당히 많이 노출시킨다. 키는 작으나크나 상관 없지만 자세가 구부정하거나 삐딱하거나 축 처져 있으면 일을 잘할 사람이 아니라 치료를 받거나 쉬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 잘생기고 예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눈빛, 안색과 표정은 최소한의 지성미와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면접 말고도 앞으로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이 더 많을 텐데 면접에서조차 마인드컨트롤이 안되어 표정관리가 안되거나 눈을 피하는 후보자는 신뢰감보다는 의구심을 산다. 옷차림은 자신이 연예인이나 동네 산책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대표해야 할 국민의 품격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특히, 말할 때 땅바닥을 보면서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과의 분명한 아이컨택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해가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같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공직자로서 대표해야 할 국민의 품격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특히, 말할 때 땅바닥을 보면서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과의 분명한 아이컨택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해가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같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몸의 정치에서 심각한 감점요인만 없으면 ‘말의 정치’에서 확실한 우월성이 있는지 살폈다.
언어 능력이 정치인의 기본 자질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험점수 같은 사전 필터링 단계 없이 누구나 원하면 지원할 수 있어서였을까? 말하는 실력이 후보자 간 점수차를 가장 많이 벌렸을지도 모른다. 말하기 준비가 거의 안된 후보자가 다수였다. 사람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은 다르겠으나, 나는 <말을 하는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즉 상대방의 궁금증을 푸는 것인지, 내 강점을 어필하는 것인지 등등) 말하려는 내용을 가장 핵심적인 논리(근거)를 들어 최소한의 단어를 써서(즉 들으나마나 한 무의미한 말 없이) 말하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이라고 봤다. 듣는 사람이 다양하므로 충돌하는 다양한 관점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말 아래에 깔려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단순히 예쁘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평소 소통에 대한 자기점검과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자기 전문분야에서의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주어진 일만 매뉴얼대로 반복하는 직종도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면 이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면접장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후보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질문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해 동문서답하는 후보자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면접장이라는 제한적인 장소에서 자신을 어떻게 어필할 것이며 어떤 면에서 점수를 따야 하는지에 대한 예측과 구상을 미리 하고 들어왔기를 바라는 건 마치 사치스런 생각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소수의 몇몇 후보자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질문에 맞게 합리적인 논리와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요점만 간명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적절히 공감을 표하면서 경청했던 후보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후보자가 ‘일의 정치’에서 뛰어난 점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국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사안들은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이 아니라 그 ‘일’의 현장과 사리에 맞게 진단되고 결정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일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1인당 할애시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검증해야 했다. 후보자 서류상의 정보와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진짜 실력을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는 후보자가 하는 말의 ‘구체성’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자신이 하겠다는 일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잘 들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분야 지원자가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엎드려 자고 있고...” 라는 식으로 말을 시작한다면, 자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 말을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후보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어떤 입법을 어떤 방식으로 입안하거나 수정하거나 폐지하거나 할 수 있는지, 해당 사안에서 과대대표되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실효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지, 반대파들을 잠재울 수 있는 논리와 전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못했다. 아주 극소수의 지원자에게서만 그런 깊은 수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소수에게서만 바로 현장에 적용했으면 하는 대안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례대표가 단순히 이익집단 대표로서만이 아니라 국리민복 전체에 대한 조망 하에서 자기 분야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일반론이나 개론이 아니라 전공 각론에 대한 이야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가서 자신의 구체적 사명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말의 정치력에서는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도, 일에 대한 실력이 드러나는 이 지점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렸다. 물론 아마도 진짜 프로일 가능성이 높은 그 후보자들이 비례 앞순위에 다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나 혼자만의 평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스펙과 개인들의 집합인 정당의 역량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 근본이라고 본다. 집단을 바꾸는 것은 집단이 아니라 집단 속 개인이다. 특히 지도적 책임적 지위를 지닌 개인 간 역학에 집단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보면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스펙과 역량의 일치도를 최소한이라도 검증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내 안목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내가 전투력을 높게 평가한 분들 모두가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인간이란 늘 ‘어떠어떠할 가능성’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일 뿐이 아니던가? 각자가 생각하는 가능성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정치과정이라고 본다. 지원자, 심사자, 그밖의 모든 관계자들 각자의 희망을 한데 몰아넣었던 이번 공천도 여지없이 구태를 다 벗기지 못한 채 끝났다. 다만, 어떤 뛰어난 리더가 20위 안에 들지 못한 뛰어난 인재들을 일일이 보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에 꾸준히 연결시켜서, 진정한 엘리트들로 거듭나도록 살폈으면 좋겠다. 그 뛰어난 리더가 누구인지, 아니 과연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업 현장은 신입사원들의 스펙과 실제 역량의 불일치로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됐다. 국회는 어떨까? 국민도 국회의원들의 스펙과 실제 역량의 불일치로 스트레스가 대단히 심하다. 공약과 실행의 불일치, 말과 행동의 불일치. 어제와 오늘의 불일치. 국민을 위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온갖 불일치라도 좀 해소되면 유권자는 얼마나 투표하기가 쉬워질까?
지난 4월 초부터 약 2주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혁신공천을 표방한 공병호 위원장 체제에서였다. 국민 앞에 내걸은 기치가 괜찮았고 흥행에도 성공해 오백 수십여 명이 지원하는 바람에 공천심사 현장은 무척 바빴다. 고차원적 상념에 빠져있을 새가 없었다. 공천위원장이 정립한 심사기준에 충실하면서, 순간적 판단에 실수해서는 안되기에 내내 긴장을 유지했다. 심사기준 중 하나는 특히 ‘전투력’이었다. 전투력은 국회에서 세 싸움에 밀리지 않고 잘 싸울 수 있는 능력이다. 국회의원은 잘못된 입안을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논평은 언론인이나 사회단체인의 일이다. 국회의원은 우리가 더 우선시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 싸워서 잘못된 입법은 저지하고 올바른 입법은 관철시켜야 한다. 다른 능력이 비슷하면 전투력이 더 나은 사람에게 점수를 줄 필요가 있다. 안그래도 모정당의 전투력 부족이 큰 문제라는 지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전투력은 서류상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운 능력이다. 무엇을 보고 평가할 것인가? 이제부터는 심사위원 개인별 경험과 지혜, 통찰력이 십분 발휘되고 종합되어야 하는 영역인데, 나는 ‘몸’ ‘말’ ‘일’ 세 가지 키워드에 집중했다.
첫째, 기본적으로 ‘몸의 정치’에서 심각한 결점이 없는지 관찰했다.
‘사람’이기에, 일단 후보자의 외양과 행동거지가 상대방에게 지고들어가는 인상을 풍겨서는 안될 것이다. 위엄을 풍길 필요까진 없어도, 만만하게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 쉽사리 폭력적인 난장판이 되곤 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질낮은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뒤로 숨어서 묻어갈 것 같은 인물보다는 앞장서서 문제를 돌파하는 파워풀한 존재감과 행동력이 있어보여야 하지 않을까? 몸가짐과 자세, 눈빛과 안색, 인상과 표정, 옷차림과 매무새, 그리고 목소리로 완성되는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완숙함에 액티브함까지 느낄 수 있는지를 관찰했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후보자의 심리 상태와 위기대처 능력을 상당히 많이 노출시킨다. 키는 작으나크나 상관 없지만 자세가 구부정하거나 삐딱하거나 축 처져 있으면 일을 잘할 사람이 아니라 치료를 받거나 쉬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 잘생기고 예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눈빛, 안색과 표정은 최소한의 지성미와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면접 말고도 앞으로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이 더 많을 텐데 면접에서조차 마인드컨트롤이 안되어 표정관리가 안되거나 눈을 피하는 후보자는 신뢰감보다는 의구심을 산다. 옷차림은 자신이 연예인이나 동네 산책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대표해야 할 국민의 품격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특히, 말할 때 땅바닥을 보면서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과의 분명한 아이컨택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해가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같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공직자로서 대표해야 할 국민의 품격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특히, 말할 때 땅바닥을 보면서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과의 분명한 아이컨택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해가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같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몸의 정치에서 심각한 감점요인만 없으면 ‘말의 정치’에서 확실한 우월성이 있는지 살폈다.
언어 능력이 정치인의 기본 자질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험점수 같은 사전 필터링 단계 없이 누구나 원하면 지원할 수 있어서였을까? 말하는 실력이 후보자 간 점수차를 가장 많이 벌렸을지도 모른다. 말하기 준비가 거의 안된 후보자가 다수였다. 사람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은 다르겠으나, 나는 <말을 하는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즉 상대방의 궁금증을 푸는 것인지, 내 강점을 어필하는 것인지 등등) 말하려는 내용을 가장 핵심적인 논리(근거)를 들어 최소한의 단어를 써서(즉 들으나마나 한 무의미한 말 없이) 말하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이라고 봤다. 듣는 사람이 다양하므로 충돌하는 다양한 관점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말 아래에 깔려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단순히 예쁘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평소 소통에 대한 자기점검과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자기 전문분야에서의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주어진 일만 매뉴얼대로 반복하는 직종도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면 이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면접장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후보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질문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해 동문서답하는 후보자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면접장이라는 제한적인 장소에서 자신을 어떻게 어필할 것이며 어떤 면에서 점수를 따야 하는지에 대한 예측과 구상을 미리 하고 들어왔기를 바라는 건 마치 사치스런 생각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소수의 몇몇 후보자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질문에 맞게 합리적인 논리와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요점만 간명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적절히 공감을 표하면서 경청했던 후보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후보자가 ‘일의 정치’에서 뛰어난 점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국민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사안들은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이 아니라 그 ‘일’의 현장과 사리에 맞게 진단되고 결정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일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1인당 할애시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검증해야 했다. 후보자 서류상의 정보와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진짜 실력을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는 후보자가 하는 말의 ‘구체성’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자신이 하겠다는 일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잘 들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분야 지원자가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엎드려 자고 있고...” 라는 식으로 말을 시작한다면, 자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 말을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후보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어떤 입법을 어떤 방식으로 입안하거나 수정하거나 폐지하거나 할 수 있는지, 해당 사안에서 과대대표되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실효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지, 반대파들을 잠재울 수 있는 논리와 전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못했다. 아주 극소수의 지원자에게서만 그런 깊은 수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소수에게서만 바로 현장에 적용했으면 하는 대안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례대표가 단순히 이익집단 대표로서만이 아니라 국리민복 전체에 대한 조망 하에서 자기 분야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일반론이나 개론이 아니라 전공 각론에 대한 이야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가서 자신의 구체적 사명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말의 정치력에서는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도, 일에 대한 실력이 드러나는 이 지점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렸다. 물론 아마도 진짜 프로일 가능성이 높은 그 후보자들이 비례 앞순위에 다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나 혼자만의 평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스펙과 개인들의 집합인 정당의 역량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 근본이라고 본다. 집단을 바꾸는 것은 집단이 아니라 집단 속 개인이다. 특히 지도적 책임적 지위를 지닌 개인 간 역학에 집단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보면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스펙과 역량의 일치도를 최소한이라도 검증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내 안목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내가 전투력을 높게 평가한 분들 모두가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인간이란 늘 ‘어떠어떠할 가능성’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일 뿐이 아니던가? 각자가 생각하는 가능성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정치과정이라고 본다. 지원자, 심사자, 그밖의 모든 관계자들 각자의 희망을 한데 몰아넣었던 이번 공천도 여지없이 구태를 다 벗기지 못한 채 끝났다. 다만, 어떤 뛰어난 리더가 20위 안에 들지 못한 뛰어난 인재들을 일일이 보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에 꾸준히 연결시켜서, 진정한 엘리트들로 거듭나도록 살폈으면 좋겠다. 그 뛰어난 리더가 누구인지, 아니 과연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