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이대남’, ‘이대녀’로 대변되는 이른바 젠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통합의 정치’는 실현할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대선을 통해 불거진 남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 시대에 걸맞는 경제적 활기와 문화적 갈등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긍정적인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을 제안한다.
20대 대선을 설명하는 '표준 서사'가 있다. 정권 심판 여론을 한몸에 끌어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손을 잡아 '이대남' 몰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내용이다.
대선 전개 과정을 보면 그럴듯하게 보인다. 2021년 12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지율 정체를 넘어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있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골든 크로스'를 당했다는 여론조사가 속속 나오던 중이었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윤석열의 측근인 이른바 '윤핵관' 문제를 지적하며 선거 대열에서 이탈한 상태. 게다가 같은 갈등이 두 번째 터져나온 것이어서, 윤석열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가고 있었다.
반전의 계기 또한 이준석으로부터 비롯했다. 당대표를 탄핵하느냐 마느냐 수준으로 당내 여론이 격양되어 있을 때, 윤석열이 국회에 깜짝 방문하여 이준석을 끌어안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50대의 윤석열과 30대의 이준석이 포옹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청년층과 노년층을 합쳐 민주당 지지가 확고한 3, 40대를 고립시킨다는 '세대포위론'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직후 윤석열의 페이스북에는 단 일곱 글자로 쓰여진 메시지가 올라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젊은 남자들이 모이는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져 들어왔다. 떨어졌던 지지율은 순식간에 회복되었고 이후 다시는 이재명에게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20대 대선에서 벌어진 이 '결정적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두 갈래 길이 있다. 첫째, 이대남을 끌어안기 위해 이대녀의 반감을 무릅쓰는 것이 국민의힘을 위한 선거 전략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둘째, 온라인에 결집한 이대남들이 선호하는 이슈가 아니라, '이대남을 끌어안았다'는 사실 자체에 초점을 두고 화합과 포용의 서사로 승화시키는 것.
이준석을 열혈 지지하는 일부 지지자들은 '안티 페미니즘 덕분에 대선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개 네티즌 뿐 아니라 정치권에 영향력이 적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해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대남들의 구미에 맞는 온라인 이슈는 이대남 득표에 도움이 되었지만, 반대로 이대녀들이 응징투표로 결집하게 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선거를 박빙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거 막바지, 이준석은 공공연하게 '5~10% 표차로 승리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러 여론조사가 가리키던 방향이었으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준석 본인에게 있었다. 선거운동 막바지에 이르러 민주당은 20대 여성표를 얻기 위해 'N번방 사건'을 최초 폭로한 것으로 알려진 박지현 '추적단 불꽃' 활동가를 영입했다. 반면 이준석은 3월 9일이 선거인데, 3월 8일 여성의날을 하루 앞둔 3월 7일 '여성들의 온라인 활동은 오프라인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젊은 여성 표심은 즉각 반발했다. 선거가 치러지기 불과 일주일 전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여성들의 이재명 지지율은 30% 말에서 40% 초에서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투표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들은 이재명에게 58.0%의 몰표를 안겨주었다. 투표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약 20%p에 가까운 표심이 이동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대 대선은 역대 가장 작은 표 차이로 끝났다. 0.7%p 차이의 신승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윤석열이 이기는 건 당연하지만 5% 차이냐 10% 차이냐, 이런 이야기를 하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남 표심을 끌어안겠다는 명분 하에 이대녀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인 이준석과, 그로 인해 불어닥친 이대녀의 응징투표라는 측면을 제외한다면, 막판 대역전극이 벌어질 뻔했던 이번 대선을 올바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선거를 두고 어떤 '정답'을 얻을 수는 없다. 모든 유권자의 마음을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오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남을 끌어안고 세대포위론을 완성하기 위해 남녀 갈등을 방관하거나, 부추기거나, 들쑤시는 것은 잘못된 정치다. 정치의 기본 당위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새 정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다. 이대남을 모으기 위해 이대녀를 적대시하는, 젠더 갈등을 키우는 정치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불러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경제적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위에서 문화적 갈등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긍정적인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 경제적 이유. 대한민국은 이제 고도성장기를 지나고 경제적으로 안정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전처럼 계층 사다리를 역동적으로 타고 움직이는 것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수십여 차례에 걸쳐 잘못된 부동산 처방을 내린 탓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탄생 원인에 대해 '여자의 손도 잡지 못하고 일자리도 얻지 못한 젊은 남자들이 손에 무기를 든다'고 평한 바 있다. 이 비극적 공식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되살리며 건강한 분배, 더 나아가 합리적인 재분배 프로세스를 모색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 갈등. 현재 20대 사이에서 남녀 갈등이 심각한 것은 일종의 아노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의 남녀관계를 규정짓던 가부장제의 영향력이 흐릿해진 가운데, 새로운 도덕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주의는 그 개념 정의상 여성 인권 운동이다. 가부장제를 철폐하고 그 폐단을 지적하며 해체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남녀관계 모델과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자를 위한 도덕률'을 달라고 하는 것은 청과상에서 소고기를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어불성설이다. 즉, 문제는 여성주의 자체가 아니라 여성주의로 인한 기존 도덕과 윤리 해체 국면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한국 및 세계 지성계의 게으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떤 답을 제시하는 것은 이 지면의 목적이 아닐 뿐더러 필자 능력 밖의 일이다. 일단 우리는 가부장제를 넘어선 새로운 도덕과 윤리 기준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겠다.
셋째, 통합과 포용의 정치. 20대 선거의 승리 서사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여성가족부 해체'가 역전의 원인이라는 단편적인 해석을 거부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대신, 윤석열이 '돌아온 탕아' 이준석을 두 번이나 끌어안았다는 그 사실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해석한다. 지지율 반등은 거기서 출발한 것이지, '여성가족부 해체'가 열광을 불러와 대선을 이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유는 '정치 초보 윤석열'에 대해 당시 국민들이 여전히 느끼고 있던 불안감 때문이다. 젊은 당대표 이준석이 두 차례나 대선 대열에서 이탈하자,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이던 대구 경북, 그 중에서도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해당 지지층이 '이대남 이슈'를 갈구해서가 아니라, 윤석열을 '지도자감이 아니다'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편이 적절하다. 반대로 이준석과 타협하고 화해하고 포용하자 지지율은 올라갔다. 윤석열이 '정치 초보'라는 사실에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대선을 통해 불거진 남녀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윤석열이 이준석을 끌어안았듯, 젊은 여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전달하고 대변하는 누군가를 발굴하고 포용한다면 어떨까? 더 큰 통합의 정치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가족부 해체'라는 일곱 글자를 넘어서, 새 시대에 걸맞는 경제적 활기와 사회적 역동성, 더욱 아름답게 구성된 남녀 관계와 성평등, 50대 50으로 극한의 대립을 하고 있는 정치를 극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정치적 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20대 대선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이대남’, ‘이대녀’로 대변되는 이른바 젠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통합의 정치’는 실현할 수 있는 것인가?
필자는 대선을 통해 불거진 남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 시대에 걸맞는 경제적 활기와 문화적 갈등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긍정적인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을 제안한다.
20대 대선을 설명하는 '표준 서사'가 있다. 정권 심판 여론을 한몸에 끌어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손을 잡아 '이대남' 몰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내용이다.
대선 전개 과정을 보면 그럴듯하게 보인다. 2021년 12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지율 정체를 넘어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있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골든 크로스'를 당했다는 여론조사가 속속 나오던 중이었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윤석열의 측근인 이른바 '윤핵관' 문제를 지적하며 선거 대열에서 이탈한 상태. 게다가 같은 갈등이 두 번째 터져나온 것이어서, 윤석열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 가고 있었다.
반전의 계기 또한 이준석으로부터 비롯했다. 당대표를 탄핵하느냐 마느냐 수준으로 당내 여론이 격양되어 있을 때, 윤석열이 국회에 깜짝 방문하여 이준석을 끌어안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50대의 윤석열과 30대의 이준석이 포옹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청년층과 노년층을 합쳐 민주당 지지가 확고한 3, 40대를 고립시킨다는 '세대포위론'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직후 윤석열의 페이스북에는 단 일곱 글자로 쓰여진 메시지가 올라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젊은 남자들이 모이는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져 들어왔다. 떨어졌던 지지율은 순식간에 회복되었고 이후 다시는 이재명에게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20대 대선에서 벌어진 이 '결정적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두 갈래 길이 있다. 첫째, 이대남을 끌어안기 위해 이대녀의 반감을 무릅쓰는 것이 국민의힘을 위한 선거 전략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둘째, 온라인에 결집한 이대남들이 선호하는 이슈가 아니라, '이대남을 끌어안았다'는 사실 자체에 초점을 두고 화합과 포용의 서사로 승화시키는 것.
이준석을 열혈 지지하는 일부 지지자들은 '안티 페미니즘 덕분에 대선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개 네티즌 뿐 아니라 정치권에 영향력이 적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해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대남들의 구미에 맞는 온라인 이슈는 이대남 득표에 도움이 되었지만, 반대로 이대녀들이 응징투표로 결집하게 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선거를 박빙으로 몰고 간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거 막바지, 이준석은 공공연하게 '5~10% 표차로 승리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러 여론조사가 가리키던 방향이었으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준석 본인에게 있었다. 선거운동 막바지에 이르러 민주당은 20대 여성표를 얻기 위해 'N번방 사건'을 최초 폭로한 것으로 알려진 박지현 '추적단 불꽃' 활동가를 영입했다. 반면 이준석은 3월 9일이 선거인데, 3월 8일 여성의날을 하루 앞둔 3월 7일 '여성들의 온라인 활동은 오프라인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젊은 여성 표심은 즉각 반발했다. 선거가 치러지기 불과 일주일 전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여성들의 이재명 지지율은 30% 말에서 40% 초에서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투표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들은 이재명에게 58.0%의 몰표를 안겨주었다. 투표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약 20%p에 가까운 표심이 이동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대 대선은 역대 가장 작은 표 차이로 끝났다. 0.7%p 차이의 신승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윤석열이 이기는 건 당연하지만 5% 차이냐 10% 차이냐, 이런 이야기를 하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남 표심을 끌어안겠다는 명분 하에 이대녀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인 이준석과, 그로 인해 불어닥친 이대녀의 응징투표라는 측면을 제외한다면, 막판 대역전극이 벌어질 뻔했던 이번 대선을 올바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선거를 두고 어떤 '정답'을 얻을 수는 없다. 모든 유권자의 마음을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오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남을 끌어안고 세대포위론을 완성하기 위해 남녀 갈등을 방관하거나, 부추기거나, 들쑤시는 것은 잘못된 정치다. 정치의 기본 당위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새 정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다. 이대남을 모으기 위해 이대녀를 적대시하는, 젠더 갈등을 키우는 정치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불러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경제적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위에서 문화적 갈등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긍정적인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 경제적 이유. 대한민국은 이제 고도성장기를 지나고 경제적으로 안정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전처럼 계층 사다리를 역동적으로 타고 움직이는 것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수십여 차례에 걸쳐 잘못된 부동산 처방을 내린 탓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탄생 원인에 대해 '여자의 손도 잡지 못하고 일자리도 얻지 못한 젊은 남자들이 손에 무기를 든다'고 평한 바 있다. 이 비극적 공식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되살리며 건강한 분배, 더 나아가 합리적인 재분배 프로세스를 모색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 갈등. 현재 20대 사이에서 남녀 갈등이 심각한 것은 일종의 아노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의 남녀관계를 규정짓던 가부장제의 영향력이 흐릿해진 가운데, 새로운 도덕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주의는 그 개념 정의상 여성 인권 운동이다. 가부장제를 철폐하고 그 폐단을 지적하며 해체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남녀관계 모델과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자를 위한 도덕률'을 달라고 하는 것은 청과상에서 소고기를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어불성설이다. 즉, 문제는 여성주의 자체가 아니라 여성주의로 인한 기존 도덕과 윤리 해체 국면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한국 및 세계 지성계의 게으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떤 답을 제시하는 것은 이 지면의 목적이 아닐 뿐더러 필자 능력 밖의 일이다. 일단 우리는 가부장제를 넘어선 새로운 도덕과 윤리 기준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겠다.
셋째, 통합과 포용의 정치. 20대 선거의 승리 서사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여성가족부 해체'가 역전의 원인이라는 단편적인 해석을 거부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대신, 윤석열이 '돌아온 탕아' 이준석을 두 번이나 끌어안았다는 그 사실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해석한다. 지지율 반등은 거기서 출발한 것이지, '여성가족부 해체'가 열광을 불러와 대선을 이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유는 '정치 초보 윤석열'에 대해 당시 국민들이 여전히 느끼고 있던 불안감 때문이다. 젊은 당대표 이준석이 두 차례나 대선 대열에서 이탈하자,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이던 대구 경북, 그 중에서도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해당 지지층이 '이대남 이슈'를 갈구해서가 아니라, 윤석열을 '지도자감이 아니다'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편이 적절하다. 반대로 이준석과 타협하고 화해하고 포용하자 지지율은 올라갔다. 윤석열이 '정치 초보'라는 사실에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대선을 통해 불거진 남녀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윤석열이 이준석을 끌어안았듯, 젊은 여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전달하고 대변하는 누군가를 발굴하고 포용한다면 어떨까? 더 큰 통합의 정치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가족부 해체'라는 일곱 글자를 넘어서, 새 시대에 걸맞는 경제적 활기와 사회적 역동성, 더욱 아름답게 구성된 남녀 관계와 성평등, 50대 50으로 극한의 대립을 하고 있는 정치를 극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정치적 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