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뚜렷이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하고, 반지성주의가 사라지고, 과학 기술과 혁신을 통한 빠른 성장으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다. 새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그 시대의 당면 과제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국민적 협조와 지지를 요청하게 된다. 어떤 취임사는 불멸(不滅)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1940년 5월 영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는 명연설을 통해 전쟁 공포에 떨고 있던 영국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고 외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취임사 역시 지금까지 회자 되고 있다
물론 취임사가 좋았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가운데 2017년 5월 취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또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고, 퇴근길에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고,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과연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는가.
처칠과 케네디가 보여줬듯 취임사는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국론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사례처럼 취임사와 실제 통치가 별 상관이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취임사는 멋졌는데 통치가 엉망일 경우 오히려 그 멋진 취임사 문구들은 비수처럼 인용되면서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지난 5월 10일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작성 과정과 내용 면에서 파격이 적지 않았다. 다른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연설문 작성팀은 구성됐다. 박주선 취임준비위원장 산하에 교수, 언론인, 작가 등 10여 명이 한 달 가까이 취임사를 작성하고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취임사 초고는 약 6,000자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취임사를 받아 든 윤 대통령이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 단순히 핵심 단어 몇 개를 추가하고 문구를 읽기 편하게 고친 게 아니라 사실상 새로 썼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약 3,400여 자 정도로 훨씬 짧아진 취임사가 탄생했다. 연설문 작성팀 관계자는 “그냥 윤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사를 직접 쓰는 건 극히 이례적이지만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본인의 대통령 취임사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연설 원고를 직접 썼다고 한다. 프린스턴대 박사 출신으로 평생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언론에 기고하고, 수많은 성명서를 작성하며 살았던 이 대통령으로선 누군가 대신 써주는 연설문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서는 미국 대통령들에게 보내는 영문 편지를 대필할 정도로 어학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거의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사를 직접 쓴 만큼 거기에는 대통령 본인의 가치와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의미가 적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의례적인 인사말을 뺀 실질적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얼핏 듣기엔 너무나 평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처럼 수없이 언급돼온 진부한 단어를 왜 취임사에서,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숨겨진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두 축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시키고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 단어들을 가장 먼저 등장시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親) 문재인계 진보 진영 인사들은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체성은 뭐란 말인가. ‘인민민주주의’여도 괜찮다는 것인가. 시장경제 강조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워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 이상 올렸던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행태를 상기해보면 그 말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윤 대통령은 또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잡은 운동권 586이었다. 이제 주인의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어지는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라는 표현은 유엔 대북인권 결의안을 잇달아 기권했던 한국 정부의 과거 행태를 상기시킨다. 북한 짝사랑과 대(對) 중국 굴종외교로 미국 등 기존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과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명한 것이다. 이런 해석에 기초해 첫 번째 문장을 보다 공세적인 용어로 풀어 쓴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586 운동권 정부는 지난 5년간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절절매고 중국 눈치를 보는 바람에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망가진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평이해 보이는 첫 문장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한 표현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반지성주의’다.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제시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코로나, 기후변화, 식량 에너지 문제, 공급망 재편 등의 난제가 있고 국내적으로도 초저성장과 실업, 양극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는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정치가 제 기능을 못 한다.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반(反)지성주의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 대신 과학과 진실을 기초로 한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강조점이 이해는 간다. 정치적 편향과 물리적 힘의 과시가 민주주의의 해악이라는 지적도 맞다. 하지만 정치집단을, 혹은 여당과 야당을, 과학과 진실을 기초로 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지성이고 너는 반지성이라고 몰아가는 것 자체가 반지성일 가능성은 없을까. 엄밀히 말하면 여당과 야당 어느 쪽도 절대선(善)은 아니지 않는가. 당장에 이런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윤석열 취임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전체적인 톤이 설득보다는 주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합니다.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재발견해야 합니다. 연대해 도와야 합니다.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등 뭔가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표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해법으로 빠른 성장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저는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루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회 갈등과 양극화의 원인을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그것도 빠른 성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전임 문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문제는 그 빠른 성장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는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무려 35번이나 사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했던 건 ‘세계시민’이라는 표현을 7번 썼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유행했던 ‘세계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시의 세계화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따라가자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 위상에 합당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뚜렷이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모두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취임사만으로는 예단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문장이나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 그걸 나무랄 건 못 된다. 언제나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쩌면 취임사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나 비로소 내려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시장경제가 융성하고, 반지성주의가 사라지고, 과학 기술과 혁신을 통한 빠른 성장으로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뚜렷이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하고, 반지성주의가 사라지고, 과학 기술과 혁신을 통한 빠른 성장으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다. 새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그 시대의 당면 과제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국민적 협조와 지지를 요청하게 된다. 어떤 취임사는 불멸(不滅)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1940년 5월 영국 총리의 자리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는 명연설을 통해 전쟁 공포에 떨고 있던 영국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고 외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취임사 역시 지금까지 회자 되고 있다
물론 취임사가 좋았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가운데 2017년 5월 취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또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고, 퇴근길에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고,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과연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는가.
처칠과 케네디가 보여줬듯 취임사는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국론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사례처럼 취임사와 실제 통치가 별 상관이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취임사는 멋졌는데 통치가 엉망일 경우 오히려 그 멋진 취임사 문구들은 비수처럼 인용되면서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지난 5월 10일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작성 과정과 내용 면에서 파격이 적지 않았다. 다른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연설문 작성팀은 구성됐다. 박주선 취임준비위원장 산하에 교수, 언론인, 작가 등 10여 명이 한 달 가까이 취임사를 작성하고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취임사 초고는 약 6,000자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취임사를 받아 든 윤 대통령이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 단순히 핵심 단어 몇 개를 추가하고 문구를 읽기 편하게 고친 게 아니라 사실상 새로 썼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약 3,400여 자 정도로 훨씬 짧아진 취임사가 탄생했다. 연설문 작성팀 관계자는 “그냥 윤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사를 직접 쓰는 건 극히 이례적이지만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본인의 대통령 취임사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연설 원고를 직접 썼다고 한다. 프린스턴대 박사 출신으로 평생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언론에 기고하고, 수많은 성명서를 작성하며 살았던 이 대통령으로선 누군가 대신 써주는 연설문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서는 미국 대통령들에게 보내는 영문 편지를 대필할 정도로 어학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거의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사를 직접 쓴 만큼 거기에는 대통령 본인의 가치와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의미가 적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의례적인 인사말을 뺀 실질적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얼핏 듣기엔 너무나 평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처럼 수없이 언급돼온 진부한 단어를 왜 취임사에서,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숨겨진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두 축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시키고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 단어들을 가장 먼저 등장시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親) 문재인계 진보 진영 인사들은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체성은 뭐란 말인가. ‘인민민주주의’여도 괜찮다는 것인가. 시장경제 강조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워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 이상 올렸던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행태를 상기해보면 그 말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윤 대통령은 또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잡은 운동권 586이었다. 이제 주인의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어지는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라는 표현은 유엔 대북인권 결의안을 잇달아 기권했던 한국 정부의 과거 행태를 상기시킨다. 북한 짝사랑과 대(對) 중국 굴종외교로 미국 등 기존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과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명한 것이다. 이런 해석에 기초해 첫 번째 문장을 보다 공세적인 용어로 풀어 쓴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586 운동권 정부는 지난 5년간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절절매고 중국 눈치를 보는 바람에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망가진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평이해 보이는 첫 문장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한 표현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반지성주의’다.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제시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코로나, 기후변화, 식량 에너지 문제, 공급망 재편 등의 난제가 있고 국내적으로도 초저성장과 실업, 양극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는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정치가 제 기능을 못 한다.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반(反)지성주의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 대신 과학과 진실을 기초로 한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강조점이 이해는 간다. 정치적 편향과 물리적 힘의 과시가 민주주의의 해악이라는 지적도 맞다. 하지만 정치집단을, 혹은 여당과 야당을, 과학과 진실을 기초로 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지성이고 너는 반지성이라고 몰아가는 것 자체가 반지성일 가능성은 없을까. 엄밀히 말하면 여당과 야당 어느 쪽도 절대선(善)은 아니지 않는가. 당장에 이런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윤석열 취임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전체적인 톤이 설득보다는 주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합니다.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재발견해야 합니다. 연대해 도와야 합니다.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등 뭔가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표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해법으로 빠른 성장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저는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루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회 갈등과 양극화의 원인을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그것도 빠른 성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전임 문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문제는 그 빠른 성장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윤 대통령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는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무려 35번이나 사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했던 건 ‘세계시민’이라는 표현을 7번 썼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유행했던 ‘세계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시의 세계화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따라가자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 위상에 합당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취임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와 뚜렷이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모두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취임사만으로는 예단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문장이나 미사여구가 거의 없다. 그걸 나무랄 건 못 된다. 언제나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쩌면 취임사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나 비로소 내려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시장경제가 융성하고, 반지성주의가 사라지고, 과학 기술과 혁신을 통한 빠른 성장으로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