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치에서는 지역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역의 의제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들이 정치권 내로 진입할 때 비로소 지방정치가 활성화될 것이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학부 수업 중에 ‘정치분석연구’라는 과목이 있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뛰어들어 직접 문제를 발굴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해당사자와 지역주민, 지역단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대안을 마련하고, 해당 자치단체의 공무원과 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조례안을 발의하는 프로젝트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룹 활동 위주로 진행되는 이 수업은 ‘가성비’를 중요시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MZ세대들에게 외면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필자가 강의하는 수업들 중 가장 인기가 좋다. 그 이유를 요약하자면 ‘정치’를 가까이서 느꼈다는 것이다. 즉 지방정치를 생활정치로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지방정치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영역이다. 주민들이 생활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생활정치,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활정치의 영역을 아무리 좁힌다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대표를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방정치를 위한 대표는 누가, 어떻게 선출되는가? 정당은 주민 행복과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을 공천하였는가? 당선자는 우리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역의제를 제시하며 당선되었는가? 얼마 전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후 약 3개월 만에 실시된 지방선거는 유례 없이 치열했던 대선의 여파로 인해 ‘대선의 2차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대선의 영향을 감안하여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서 과연 지방선거가 생활정치의 대표를 선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제였는지 확인해보자.
이번 지방선거의 첫 번째 특징은 시끄러운 공천과정이다. 공천잡음이 없었던 선거를 헤아리는 것이 더 어려울 만큼 한국 선거에서의 공천문제는 항상 논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공천과정의 공정성 및 투명성 등에 대한 논란 외에도 제도적인 쟁점이 있었다. 양대 정당이 도입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였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전문성 및 자질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People Power Aptitude Test)’를 도입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도덕성 및 능력검증을 위해 ‘선출직 공직자 평가제도’를 실시했다.
국민의힘에서 공직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필답 시험을 치르도록 한 PPAT는 지방의원 후보자로 공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응시해야 하며, 공직자 직무수행, 분석 및 판단력 평가, 현안 분석 능력 등 3개 영역에 걸쳐 총 3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례대표 기초의원으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60점 이상을 얻어야 하며, 비례대표 광역의원으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7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지역구 지방의원 공천은 커트라인(cut line)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산점 산정에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 시험의 내용과 형식에서 국가공무원 응시생들이 치르는 ‘공직적격성평가(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행정부 공무원 채용시험을 지방정치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지역에서 정당정치가 소멸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적용과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시험 출제의 주체이다. 이 시험은 중앙당에서 주관한 것으로 지역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물론 정당 소속의 선출직 공직자로서 당의 규정이나 정책 및 공직선거법을 알아야 하고 직무수행을 위해 자료해석 및 상황판단 등에 대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 밀접한 지방정치를 위해서는 지역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872명의 광역의원과 2,988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시험으로 그 자격을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앙적’인 사고라 하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제7회 지방선거에서부터 공천심사 이전에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공천을 신청하고자 하는 현직자들은 모두 평가 대상이 되었다. 단체장의 경우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여론조사와 대면평가를 바탕으로 점수를 산정했으며, 지방의회 의원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다면평가와 당원평가를 합한 점수를 받는다. 특히 최근 민주당 내 도덕적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번 선거부터는 도덕성 항목이 중요한 평가지표로 다뤄지게 되었다. 이 평가에서 하위 20%에 해당하는 선출직 공직자는 공천심사 점수에서 20%를 감하게 되며, 이후 경선에 돌입하더라도 경선 점수에서 20%를 재감하게 되는 매우 영향력 있는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가 공천과정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전략공천위가 컷오프(cut-off)한 후보를 비대위가 다시 부활시키는 해프닝이 발생한 것을 보더라도 당내의 일관되고 합의된 공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 7,531명 중 2,727명, 즉 36%(국민의힘 35.4%, 더불어민주당 30.9%)가 전과자라는 웃지 못할 통계를 보면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항목인 도덕성 점수도 과연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평가 자체도 역시 중앙당이 총괄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평가위원(내부위원/외부위원) 선정부터 직접적인 평가 시행은 각 시도당에서 주관했지만, 그 항목이나 배점, 평가방식 등은 모두 중앙당의 관리 하에 이뤄진 것이다. 즉 여기서도 ‘지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 특징은 무투표 당선자가 역대 최고로 많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모두 508명으로, 기초단체장은 6명, 광역의원은 108명, 기초의원은 394명에 달한다. 그동안 대다수의 무투표 당선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지배적인 선거환경을 가지는 경우에 해당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양대 정당이 예상 득표율을 추산한 후 선출 정수의 범위 내에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인원으로 공천을 제한함으로써 당선자를 사이좋게 나눠가진 현상이 발생했다. 선출 정수 범위 내에서 후보자 등록이 이뤄지면 유권자는 선택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이는 정당에서 문제가 있는 후보자를 공천하더라도 유권자가 자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는 이러한 현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수도권에서 투표 없이 당선된 182명의 의원 중 45명(24.7%)이 전과자로 나타났다. 즉 무투표 당선 의원 4명 중 1명은 전과기록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 기초의원 5명은 ‘전과 3범’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결국 지방정치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며, 양대 정당이 지방정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볼 때, 지방선거에서 ‘지역’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역의 대표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대리인을 뽑는 선거였다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회의 정당공천 폐지와 지구당의 부활, 그리고 지역정당의 설립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우선 기초의회의 정당공천 폐지는 우리의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직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미흡한 시점에서 정당공천까지 폐지된다면 오히려 지방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지구당의 부활이다. 1962년 정당법이 제정된 이후 정당의 지역조직으로 기능해온 지구당은 중앙정치와 유권자를 연계하는 풀뿌리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대신 정치인의 선거조직 관리와 선거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됐다. 이처럼 정치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진 지구당은 정치개혁을 논할 때마다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지적받아왔고, 결국 2004년 3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구당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지구당은 폐지되었다.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변화한 정치환경을 근거로 힘을 받고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확보되었으며,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전의 부정한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지역에서 정당과 유권자가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차단되었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참여의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정당과 지역 간의 연계성이 보다 높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구당 부활만으로 이번 선거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상향식 의사결정과 후보자 선출, 지역 중심의 정당 운영의 민주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정당이라는 또 다른 대안에 기대를 해본다. 지역정당이란 전 국가적인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로 지역 문제의 해결과 지역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를 말한다. 두베르제(Duverger)는 지역정당이 추구하는 것 또한 전국정당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지역정당도 선거에서 승리해 지방의회와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지역의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이 스스로 의제를 형성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해결하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정당은 생활정치 영역에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향식 동원에만 의존해왔던 한국의 정당정치 메커니즘을 재편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법을 손봐야 한다. 한국의 지방정치 현장에도 풀뿌리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지역사회의 발전과 주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당 등록 신청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 정당법에 지역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법에 따르면 각 정당은 중앙당을 수도에 두고(제3조), 5개 이상의 시ㆍ도당을 가져야 하며(제17조), 시ㆍ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제18조). 즉 지역주민들로만 구성된 정당의 창당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지역정당 창당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독일은 1990년대 이후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지역정당과 기성정당은 지방정치 현장에서 경쟁구도를 가지며, 지역정당은 평균 30% 정도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정당법에서 규정하는 정당 성립요건보다 더 규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국가는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별도의 정당법이 존재하지 않거나, 정당법이 존재하더라도 정당의 성립요건이 까다롭지 않다. 물론 이러한 국가에서 지역정당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방정치에서는 지역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현재의 양당 구도 하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지역 의제라 하더라도 양대 정당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의 의제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정치권 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한 길이며, 이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방정치에서는 지역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역의 의제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들이 정치권 내로 진입할 때 비로소 지방정치가 활성화될 것이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학부 수업 중에 ‘정치분석연구’라는 과목이 있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뛰어들어 직접 문제를 발굴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해당사자와 지역주민, 지역단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대안을 마련하고, 해당 자치단체의 공무원과 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조례안을 발의하는 프로젝트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룹 활동 위주로 진행되는 이 수업은 ‘가성비’를 중요시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MZ세대들에게 외면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필자가 강의하는 수업들 중 가장 인기가 좋다. 그 이유를 요약하자면 ‘정치’를 가까이서 느꼈다는 것이다. 즉 지방정치를 생활정치로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지방정치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영역이다. 주민들이 생활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생활정치,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활정치의 영역을 아무리 좁힌다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대표를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방정치를 위한 대표는 누가, 어떻게 선출되는가? 정당은 주민 행복과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을 공천하였는가? 당선자는 우리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역의제를 제시하며 당선되었는가? 얼마 전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후 약 3개월 만에 실시된 지방선거는 유례 없이 치열했던 대선의 여파로 인해 ‘대선의 2차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대선의 영향을 감안하여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서 과연 지방선거가 생활정치의 대표를 선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제였는지 확인해보자.
이번 지방선거의 첫 번째 특징은 시끄러운 공천과정이다. 공천잡음이 없었던 선거를 헤아리는 것이 더 어려울 만큼 한국 선거에서의 공천문제는 항상 논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공천과정의 공정성 및 투명성 등에 대한 논란 외에도 제도적인 쟁점이 있었다. 양대 정당이 도입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였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전문성 및 자질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People Power Aptitude Test)’를 도입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도덕성 및 능력검증을 위해 ‘선출직 공직자 평가제도’를 실시했다.
국민의힘에서 공직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필답 시험을 치르도록 한 PPAT는 지방의원 후보자로 공천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응시해야 하며, 공직자 직무수행, 분석 및 판단력 평가, 현안 분석 능력 등 3개 영역에 걸쳐 총 3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례대표 기초의원으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60점 이상을 얻어야 하며, 비례대표 광역의원으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7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지역구 지방의원 공천은 커트라인(cut line)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산점 산정에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 시험의 내용과 형식에서 국가공무원 응시생들이 치르는 ‘공직적격성평가(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행정부 공무원 채용시험을 지방정치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지역에서 정당정치가 소멸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적용과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시험 출제의 주체이다. 이 시험은 중앙당에서 주관한 것으로 지역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물론 정당 소속의 선출직 공직자로서 당의 규정이나 정책 및 공직선거법을 알아야 하고 직무수행을 위해 자료해석 및 상황판단 등에 대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 밀접한 지방정치를 위해서는 지역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872명의 광역의원과 2,988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시험으로 그 자격을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앙적’인 사고라 하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제7회 지방선거에서부터 공천심사 이전에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공천을 신청하고자 하는 현직자들은 모두 평가 대상이 되었다. 단체장의 경우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여론조사와 대면평가를 바탕으로 점수를 산정했으며, 지방의회 의원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다면평가와 당원평가를 합한 점수를 받는다. 특히 최근 민주당 내 도덕적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번 선거부터는 도덕성 항목이 중요한 평가지표로 다뤄지게 되었다. 이 평가에서 하위 20%에 해당하는 선출직 공직자는 공천심사 점수에서 20%를 감하게 되며, 이후 경선에 돌입하더라도 경선 점수에서 20%를 재감하게 되는 매우 영향력 있는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가 공천과정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전략공천위가 컷오프(cut-off)한 후보를 비대위가 다시 부활시키는 해프닝이 발생한 것을 보더라도 당내의 일관되고 합의된 공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 7,531명 중 2,727명, 즉 36%(국민의힘 35.4%, 더불어민주당 30.9%)가 전과자라는 웃지 못할 통계를 보면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항목인 도덕성 점수도 과연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평가 자체도 역시 중앙당이 총괄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평가위원(내부위원/외부위원) 선정부터 직접적인 평가 시행은 각 시도당에서 주관했지만, 그 항목이나 배점, 평가방식 등은 모두 중앙당의 관리 하에 이뤄진 것이다. 즉 여기서도 ‘지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 특징은 무투표 당선자가 역대 최고로 많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모두 508명으로, 기초단체장은 6명, 광역의원은 108명, 기초의원은 394명에 달한다. 그동안 대다수의 무투표 당선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지배적인 선거환경을 가지는 경우에 해당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양대 정당이 예상 득표율을 추산한 후 선출 정수의 범위 내에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인원으로 공천을 제한함으로써 당선자를 사이좋게 나눠가진 현상이 발생했다. 선출 정수 범위 내에서 후보자 등록이 이뤄지면 유권자는 선택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이는 정당에서 문제가 있는 후보자를 공천하더라도 유권자가 자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는 이러한 현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수도권에서 투표 없이 당선된 182명의 의원 중 45명(24.7%)이 전과자로 나타났다. 즉 무투표 당선 의원 4명 중 1명은 전과기록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 기초의원 5명은 ‘전과 3범’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결국 지방정치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며, 양대 정당이 지방정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볼 때, 지방선거에서 ‘지역’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역의 대표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대리인을 뽑는 선거였다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회의 정당공천 폐지와 지구당의 부활, 그리고 지역정당의 설립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우선 기초의회의 정당공천 폐지는 우리의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직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미흡한 시점에서 정당공천까지 폐지된다면 오히려 지방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지구당의 부활이다. 1962년 정당법이 제정된 이후 정당의 지역조직으로 기능해온 지구당은 중앙정치와 유권자를 연계하는 풀뿌리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대신 정치인의 선거조직 관리와 선거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됐다. 이처럼 정치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진 지구당은 정치개혁을 논할 때마다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지적받아왔고, 결국 2004년 3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구당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지구당은 폐지되었다.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변화한 정치환경을 근거로 힘을 받고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확보되었으며,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전의 부정한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지역에서 정당과 유권자가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차단되었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참여의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정당과 지역 간의 연계성이 보다 높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구당 부활만으로 이번 선거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상향식 의사결정과 후보자 선출, 지역 중심의 정당 운영의 민주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정당이라는 또 다른 대안에 기대를 해본다. 지역정당이란 전 국가적인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로 지역 문제의 해결과 지역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를 말한다. 두베르제(Duverger)는 지역정당이 추구하는 것 또한 전국정당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지역정당도 선거에서 승리해 지방의회와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지역의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이 스스로 의제를 형성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해결하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정당은 생활정치 영역에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향식 동원에만 의존해왔던 한국의 정당정치 메커니즘을 재편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법을 손봐야 한다. 한국의 지방정치 현장에도 풀뿌리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지역사회의 발전과 주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당 등록 신청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 정당법에 지역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법에 따르면 각 정당은 중앙당을 수도에 두고(제3조), 5개 이상의 시ㆍ도당을 가져야 하며(제17조), 시ㆍ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제18조). 즉 지역주민들로만 구성된 정당의 창당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지역정당 창당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독일은 1990년대 이후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지역정당과 기성정당은 지방정치 현장에서 경쟁구도를 가지며, 지역정당은 평균 30% 정도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정당법에서 규정하는 정당 성립요건보다 더 규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국가는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별도의 정당법이 존재하지 않거나, 정당법이 존재하더라도 정당의 성립요건이 까다롭지 않다. 물론 이러한 국가에서 지역정당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방정치에서는 지역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현재의 양당 구도 하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지역 의제라 하더라도 양대 정당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의 의제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정치권 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한 길이며, 이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