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경쟁과 혼합봉쇄전략

안녕하세요, (사)경제사회연구원입니다. 

2023년 4월 6일, 경사연 외교안보센터(센터장: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서 김동중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를 모시고 "강대국 경쟁과 혼합봉쇄전략"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였습니다.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미중 간 전략 갈등은 중국의 힘의 성장과 깊게 관련되어 있고, 중국의 힘의 성장은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중국으로부터 제기되는 전략적 도전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미국은 군사적 대응과 함께 경제적 대응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 근래의 강대국 관계와 관련한 담론에서는 미중 간 경제관계가 지정학적 경쟁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주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주장들에 따르면 경제안보연계가 매우 심화된 오늘날 강대국간 갈등에서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정치적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 강대국을 지지하는 선택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혼합봉쇄(Compound Containment: A Reigning Power’s Military-Economic Countermeasures against the Challenging Power)라는 제목의 발표자의 저작은 미중 간 전략경쟁의 추이와 한국의 선택을 이해하는데 있어 의미가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국제체제의 주도 국가가 부상하는 국가를 군사적으로 봉쇄할 때 언제 포괄적인 경제적(특히 무역 관련) 제약 정책을 동시에 취함으로써 혼합봉쇄(compound containment)를 실행하는지를 이론화한다. 강대국 경쟁의 근본원인이 경제발전의 차이에 따른 힘의 균형 변화에 기인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혼합봉쇄는 주도국가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전략적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혼합봉쇄는 특정한 국제구조 하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제체제의 주도국가가 도전국을 대체할 경제적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반면 도전국은 대체경제파트너를 찾지 못할 때 혼합봉쇄는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경제적 제약을 통해 주도국은 도전국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이는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 같은 구조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군사적 봉쇄에 국한된 대응전략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도국이 대체경제파트너를 찾을 수 없으나 도전국에게는 다른 경제적 파트너가 있을 경우 주도국의 경제적 제약정책은 자신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 경우 심화되는 군사적 경쟁과 정치적 적대에도 불구, 주도국은 도전국과의 무역 관계를 상당부분 이어갈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과 국내정치 및 이념에 중점을 두는 대안적 설명들을 1차 문헌을 폭넓게 사용한 영국 및 미국의 사례연구들을 통해 검증한다. 검토되는 사례들은 19세기 말 이후에 나타난 국제체제의 주도국과 도전국 간 경쟁관계로, 각각의 사례에서 주도국은 도전국에 대해 군사 및 전략적 봉쇄정책을 실행했고, 동시에 경제적 관계를 재고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출처: Compound Containment: A Reigning Power’s Military-Economic Countermeasures against the Challenging Power, p. 140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과 소련에 대한 이른바 ‘신냉전’을 수행한 레이건 행정부는 강력한 군사적 봉쇄정책에도 불구, 도전국과의 무역관계를 포괄적으로 제약하기 위한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고 따라서 혼합봉쇄를 선택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지도부는 독일과의 무역관계를 폭넓게 재조정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실행할 경우 영국이 독일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고 따라서 해군력경쟁 및 삼국동맹형성과 같은 심각한 안보갈등이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독일과의 폭넓은 무역관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판단은 독일이 대체경제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으나 영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분석에 기반하고 있었다. 레이건 시기의 미국 역시 가장 중요한 대소련 무역 항목이었던 곡물수출을 제한할 경우 대체경제파트너의 존재여부를 고려할 때 미국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에도 혼합봉쇄를 실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도전국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경우 주도국은 포괄적인 경제적 제약을 군사적 봉쇄와 동시해 시행하는 혼합봉쇄를 채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저작은 오늘날의 강대국 경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중국이라는 도전국을 직면하고 있는 미국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군사적 봉쇄전략을 경제적 제약정책으로 보완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경제구조 하에서 미국이 무역분야에서 포괄적인 제약을 통해 중국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고 따라서 혼합봉쇄를 실행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심화되는 기술경쟁의 경우에도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 보다는 중국에게 부여하려는 역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선호하는 중국의 역할로는 세계 주요 기업들의 하청으로써, ‘미래기술’을 탐내지 않고 ‘현재기술’을 규정에 따라 받아서 사용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남아있는 것과 가까운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강대국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반적인 정치적 입장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실행 간 차이를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것이 미중 경쟁의 ‘뉴 노멀’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이슈영역에서 갈등과 협력이 혼재하는 강대국 경쟁 하에서 한국은 단순한 진영적 접근법을 회피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무역관계가 폭넓게 이어지는 가운데 진영적 사고는 미국의 실질적인 대중국 접근법과도 일치하지 않는 현명하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고, 이슈별로, 같은 이슈라도 구체적인 사안 별로, 같은 사안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다양한 미국주도의 다자협력 노력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상당기간동안 폭넓게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미국주도의 다자질서에 참여하는 것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심각한 단절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다자협력 노력들에 참여하지 않는 리스크가 참여하는 리스크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