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경제학자이자 은퇴 연구 전문가로서 고령 사회와 은퇴 후 노후 자산 관리 등을 연구해 왔다.
노년기에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서 벗어나기에 보다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남겨진 노년의 본질은 계속해서 성찰하고 가꿔 나가야 한다.
노년이 갖춰야 할 품격을 그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나이가 들면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쉽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세월의 길이만큼 깊어지는 듯하다. 특히, 분노의 감정을 곧 잘 표출하게 되어 일본에서는 ‘폭주노인’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1990년대 초부터 15년간 고령자 수는 두 배 증가했는데 고령자 범죄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지혜와 분별력으로 젊은이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는 노인들이 스스로 질풍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속담 이 무색할 지경이다. 노년의 품격이 위협받고 있다.
품격은 영어로 dignity라 한다. 캠브리지 사전이나 웹스터 사전에서는 조용하고 진지하고 절제된 행동을 해서, 혹은 모습이나 언어에서의 진지함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유발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라틴어 어원은 dignitas로 높은 정치적, 사회적 지위 및 그에 따른 도덕적 품성을 소유한 것을 말한다. 한자로 품品은 입이 세 개 모여 있으니 말의 격格을 뜻한다. 그 의미를 최근 우리사회에서 실감하고 있다. 말은 정신에서 나오니 품격은 정신의 격인 셈이다.
나이가 들면 다음의 이유들로 품격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선, 나의 육체는 세계로부터 추방당한다. 신체의 쇠약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나를 볼 때 내가 낯설다. 입이 마르면서 체취도 달라진다. 잘 까먹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반복하고 옛날 일을 얘기한다. 안 들리니 목소리가 화난 듯 커진다. 호르몬이 변화하고 몸은 쇠약해져 몸 상태가 자주 짜증난다.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쌓인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어디서 감정의 스파크라도 일어나면 금방 크게 불이 붙을 수 있다.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일본에서의 폭주노인은 빠르게 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DNA에는 농경사회의 변화속도가 각인되어 있는데 20세기 들어 산업혁명, 기술혁명 등으로 변화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컴퓨터를 익혔는데 이제 모바일로 옮겨 가고 있다. 키오스크에서 우물쭈물하는 노인을 젊은이는 원시인 보듯 한다. 노인은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모바일의 SNS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되었으므로 여기에서 소외되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외가 분노로 표출된다.
설상가상으로 럭비공 같이 되어 가는 노년의 나를 제어해줄 타자他者가 없어진다. 험한 말을 하거나 몸이 깨끗하지 못해도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있고, 사회에 나와서는 공적인 일로 만나는 인간관계들이 있기 때문에 언행을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옆길로 크게 벗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고한 박원순 전前 시장 사건 때 신독愼獨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이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나를 일탈하게 할 요인은 많아지는 데 반해 이런 나를 제어해 줄 메카니즘이 사라지는 게 노년의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육체적 품격과 함께 정신적 품격도 사라지게 된다. 노년에 품격이 강조되는 이유다. 품격은 너그럽고, 진중하며, 절제하여, 더디 화를 내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를 제어해야 하며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품격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세 가지 정도만 말해본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을 하고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 노년의 건강함은 그 자체에 기품이 있다. 이를 노익장老益壯이라 한다. 노년에 몸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과다하게 허약해지는 건 노년의 약점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건강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식축구 수퍼볼 하프 타임에 제니퍼 로페즈가 나와서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불태웠는데 나이가 만 51세다. 거의 30대 초반처럼 무대를 뛰어다녔다. 타고난 것도 있겠 지만 훈련과 절제를 하면 이전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둘째, 성찰을 통해 나를 계속 반성해야 한다. 기름이 없으면 등불이 꺼지듯 마음과 정신도 노년이 되면 꺼진다. 얼마 전 고등학교 선배님이 밤 10시 30분에 카톡방에 뜬금없이 짤막한 글을 하나 올렸다. 내용인즉, 운전 중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정혜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든다고 그냥 성숙해지는 것도 아닌데 이제 마음 공부책을 끼고 살아야겠다고 덧붙였다.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면서 에고ego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 속에 있는 장엄함과 숭고함을 끄집어낸다. 동이 트는 새벽 바다를 바라보거나 그랜드 캐년을 보면 장엄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 속에 그런 장엄함이 있기 때문이다. 장엄함이 없이 장엄함을 느낄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 예술품을 보면 이들의 품격과 내 안의 품격이 공명共鳴을 하면서 잠을 깬다. 수컷 고릴라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건널 때 다른 가족들이 모두 건널 때까지 도로 중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동물이지만 숭고함을 느낀다. 우리 속에 그런 숭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뉴스 보고 혈압 오른다는 분들 많다. 정치 기사에 필사적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50대 이상 남성이다. 문학, 철학, 예술, 자연 등 아름다운 대상으로 관심을 분산해보자. 그러면 잊었던 장엄함과 숭고함을 내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노년은 작두 위에서 굿판을 벌이는 격이다. 한편에는 노추老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품격 있는 노년이 있다. 자칫하면 노추의 길로 떨어져 발이 크게 베일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소년, 청년, 장년 때 노력했던 것처럼 노년에 품격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훈련, 절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노인 같은 구석이 있는 젊은이를 좋아하듯이,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년의 품격을 갖추기 위한 요체를 한 마디로 하라면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이라 하고 싶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경제학자이자 은퇴 연구 전문가로서 고령 사회와 은퇴 후 노후 자산 관리 등을 연구해 왔다.
노년기에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서 벗어나기에 보다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남겨진 노년의 본질은 계속해서 성찰하고 가꿔 나가야 한다.
노년이 갖춰야 할 품격을 그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나이가 들면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쉽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세월의 길이만큼 깊어지는 듯하다. 특히, 분노의 감정을 곧 잘 표출하게 되어 일본에서는 ‘폭주노인’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1990년대 초부터 15년간 고령자 수는 두 배 증가했는데 고령자 범죄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지혜와 분별력으로 젊은이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는 노인들이 스스로 질풍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속담 이 무색할 지경이다. 노년의 품격이 위협받고 있다.
품격은 영어로 dignity라 한다. 캠브리지 사전이나 웹스터 사전에서는 조용하고 진지하고 절제된 행동을 해서, 혹은 모습이나 언어에서의 진지함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유발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라틴어 어원은 dignitas로 높은 정치적, 사회적 지위 및 그에 따른 도덕적 품성을 소유한 것을 말한다. 한자로 품品은 입이 세 개 모여 있으니 말의 격格을 뜻한다. 그 의미를 최근 우리사회에서 실감하고 있다. 말은 정신에서 나오니 품격은 정신의 격인 셈이다.
나이가 들면 다음의 이유들로 품격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선, 나의 육체는 세계로부터 추방당한다. 신체의 쇠약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나를 볼 때 내가 낯설다. 입이 마르면서 체취도 달라진다. 잘 까먹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반복하고 옛날 일을 얘기한다. 안 들리니 목소리가 화난 듯 커진다. 호르몬이 변화하고 몸은 쇠약해져 몸 상태가 자주 짜증난다.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쌓인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어디서 감정의 스파크라도 일어나면 금방 크게 불이 붙을 수 있다.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일본에서의 폭주노인은 빠르게 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DNA에는 농경사회의 변화속도가 각인되어 있는데 20세기 들어 산업혁명, 기술혁명 등으로 변화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컴퓨터를 익혔는데 이제 모바일로 옮겨 가고 있다. 키오스크에서 우물쭈물하는 노인을 젊은이는 원시인 보듯 한다. 노인은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모바일의 SNS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되었으므로 여기에서 소외되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외가 분노로 표출된다.
설상가상으로 럭비공 같이 되어 가는 노년의 나를 제어해줄 타자他者가 없어진다. 험한 말을 하거나 몸이 깨끗하지 못해도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있고, 사회에 나와서는 공적인 일로 만나는 인간관계들이 있기 때문에 언행을 반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옆길로 크게 벗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고한 박원순 전前 시장 사건 때 신독愼獨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이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나를 일탈하게 할 요인은 많아지는 데 반해 이런 나를 제어해 줄 메카니즘이 사라지는 게 노년의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육체적 품격과 함께 정신적 품격도 사라지게 된다. 노년에 품격이 강조되는 이유다. 품격은 너그럽고, 진중하며, 절제하여, 더디 화를 내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를 제어해야 하며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품격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세 가지 정도만 말해본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을 하고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 노년의 건강함은 그 자체에 기품이 있다. 이를 노익장老益壯이라 한다. 노년에 몸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과다하게 허약해지는 건 노년의 약점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건강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식축구 수퍼볼 하프 타임에 제니퍼 로페즈가 나와서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불태웠는데 나이가 만 51세다. 거의 30대 초반처럼 무대를 뛰어다녔다. 타고난 것도 있겠 지만 훈련과 절제를 하면 이전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둘째, 성찰을 통해 나를 계속 반성해야 한다. 기름이 없으면 등불이 꺼지듯 마음과 정신도 노년이 되면 꺼진다. 얼마 전 고등학교 선배님이 밤 10시 30분에 카톡방에 뜬금없이 짤막한 글을 하나 올렸다. 내용인즉, 운전 중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정혜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든다고 그냥 성숙해지는 것도 아닌데 이제 마음 공부책을 끼고 살아야겠다고 덧붙였다.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면서 에고ego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 속에 있는 장엄함과 숭고함을 끄집어낸다. 동이 트는 새벽 바다를 바라보거나 그랜드 캐년을 보면 장엄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 속에 그런 장엄함이 있기 때문이다. 장엄함이 없이 장엄함을 느낄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 예술품을 보면 이들의 품격과 내 안의 품격이 공명共鳴을 하면서 잠을 깬다. 수컷 고릴라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건널 때 다른 가족들이 모두 건널 때까지 도로 중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동물이지만 숭고함을 느낀다. 우리 속에 그런 숭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뉴스 보고 혈압 오른다는 분들 많다. 정치 기사에 필사적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50대 이상 남성이다. 문학, 철학, 예술, 자연 등 아름다운 대상으로 관심을 분산해보자. 그러면 잊었던 장엄함과 숭고함을 내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노년은 작두 위에서 굿판을 벌이는 격이다. 한편에는 노추老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품격 있는 노년이 있다. 자칫하면 노추의 길로 떨어져 발이 크게 베일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소년, 청년, 장년 때 노력했던 것처럼 노년에 품격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훈련, 절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노인 같은 구석이 있는 젊은이를 좋아하듯이,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년의 품격을 갖추기 위한 요체를 한 마디로 하라면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이라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