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전 국회의원은 한국규제학회 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끊임없이 규제를 연구해 왔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시장경제를 위해 한국 규제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그의 글을 통해 한국 규제의 현실을 짚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본다.
1. 역대 모든 정부가 추진한 규제개혁
1980년대 이후 역대 모든 정부가 대를 이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하나가 바로 규제개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 정권 때부터 다양한 형태로, 행정 쇄신, 행정개혁, 규제완화, 규제혁파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이어져 왔다. 소위 좌파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을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속하고 있고, 법적 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도 법적으로 부여된 기능을 지속하고 있다.
거의 40년 가까이 규제개혁을 했고 선진국형 개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은 우리 경쟁국 보다 못하다. 기업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고, 생활안전, 환경보호 같은 국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의 실효성은 매우 낮다.
한국의 규제개혁이 미흡한 것은 규제개혁 시스템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규제개혁 시스템을 부실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소위 좌파 정권의 시장에 대한 불신과 정부기능에 대한 과신, 규제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과 정치권과 관료조직의 집단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2. 규제는 양보다 질이 문제
2016년 이래 정부는 집행하는 규제의 총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16년 당시 약 15,000여개의 규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론이고 다국적 기업들 조차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규제의 품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규제가 불량규제인가?
규제로부터 국민이 받는 부담은 준수해야 하는 절차나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개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규제라도 그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적 물적 고통을 포함한 총체적 준수부담에 달려 있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민원의 결과는 집행자의 임의적 판단에 달려 있다면, 그것이 비록 한 개의 규제조항일지라도 규제를 받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규제가 품질이 낮은 불량규제로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규제 제도와 절차가 원칙금지, 예외적 허용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규제들은 기본적으로 민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아예 국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가정하고 도입된 규제들이다. 민간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막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들은 전형적으로 인허가 규제와 같은 사전통제를 통해 원칙금지, 허용 예외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규정에 되는 일만 나열하고 규정에 없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형식이다. 상징적 예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선진국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이 원칙이지만, 한국에서는 허용되는 곳에서만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하다.
환경, 산업안전, 의료, 교육 등 전통 분야에서 기업 활동에 대한 획일적이고 사전적인 규제는 물론이고,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우버택시, 에어비앤비 등 각종 신산업과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규제도 대부분 현행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법화되어 있다. 각종 고용 및 근로기준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규제 풍토에서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민간 경제활동의 뒷다리를 잡게 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 피동적으로 규정이나 지키면 된다는 풍조가 생기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억제된 하향평준화가 초래된다. 소수의 잠재적 범법자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단체기합을 받는 셈이다.
또, 민간 입장에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고통스러운 큰 원인은 규제의 절차와 기준이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결과가 예측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집행하는 공무원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관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은 관청에만 가면 이유 없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을 위축 시키는 요인이 된다. 역설적으로 되는 규제는 공무원을 안 만나도 되고, 안되는 규제는 장관이 압력을 가해도 안되도록 하면, 기업활동은 체감적으로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다.
3.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배경 : 규제만능주의의 확산
우리나라의 규제 품질이 이와 같이 고비용 저효율의 낮은 품질을 가지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규제만능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 정권의 출범과 입법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시장기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이런 추세가 더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 확산과 이에 따른 방역 강화가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의원입법이나 국회에 제안되어 있는 수 많은 법안들을 보면 규제만능주의와 관치계획경제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규제고,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보호 장벽들이다.
분배와 형평, 참여의 이름으로 각종 할당제, 의무제, 허가제와 같은 고강도의 규제가 여러 분야에서 계속 도입되고 강화되고 있다. 상징적 사례가 현 정부의 주택정책과 임대차보호 관련 법들이다. ‘공정경제 3법’이라는 규제법도 규제목적이 무엇인지, 규제수단은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정한지에 대한 고려 없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규제들이 대부분 비전문적 주장과 정치적 고려에 의해 도입되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효과, 준수부담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과 이념에 치우친 나머지 목적이 정당하므로 무슨 수단이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다.
4. 규제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공공선택이론에서는 규제의 도입과 변화 과정을 공익 증진을 위한 과정이라기 보다는 이익집단의 이해조정의 산물로 보고 있다. 중요하고 민감한 규제가 개혁의 대상이 될 때마다 온갖 이익집단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규제를 도입하는 정치권과 규제를 집행하는 관료조직도 하나의 이익집단일 뿐이다.
다원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될수록 조직화된 소수가 분산된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형태의 정부실패와 규제실패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시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규제의 신설 강화 과정에서 과학적 분석과 증거에 기반한 규제 시스템 설계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입법과 정책 결정 과정에 전문적 의견 수렴과 조직되지 못한 다수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김종석 전 국회의원은 한국규제학회 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끊임없이 규제를 연구해 왔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시장경제를 위해 한국 규제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그의 글을 통해 한국 규제의 현실을 짚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본다.
1. 역대 모든 정부가 추진한 규제개혁
1980년대 이후 역대 모든 정부가 대를 이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하나가 바로 규제개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 정권 때부터 다양한 형태로, 행정 쇄신, 행정개혁, 규제완화, 규제혁파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이어져 왔다. 소위 좌파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을 ‘규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속하고 있고, 법적 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도 법적으로 부여된 기능을 지속하고 있다.
거의 40년 가까이 규제개혁을 했고 선진국형 개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은 우리 경쟁국 보다 못하다. 기업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고, 생활안전, 환경보호 같은 국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의 실효성은 매우 낮다.
한국의 규제개혁이 미흡한 것은 규제개혁 시스템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규제개혁 시스템을 부실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소위 좌파 정권의 시장에 대한 불신과 정부기능에 대한 과신, 규제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과 정치권과 관료조직의 집단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2. 규제는 양보다 질이 문제
2016년 이래 정부는 집행하는 규제의 총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16년 당시 약 15,000여개의 규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론이고 다국적 기업들 조차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규제의 품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규제가 불량규제인가?
규제로부터 국민이 받는 부담은 준수해야 하는 절차나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개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규제라도 그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적 물적 고통을 포함한 총체적 준수부담에 달려 있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민원의 결과는 집행자의 임의적 판단에 달려 있다면, 그것이 비록 한 개의 규제조항일지라도 규제를 받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규제가 품질이 낮은 불량규제로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규제 제도와 절차가 원칙금지, 예외적 허용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규제들은 기본적으로 민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아예 국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가정하고 도입된 규제들이다. 민간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막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들은 전형적으로 인허가 규제와 같은 사전통제를 통해 원칙금지, 허용 예외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규정에 되는 일만 나열하고 규정에 없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형식이다. 상징적 예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선진국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이 원칙이지만, 한국에서는 허용되는 곳에서만 비보호 좌회전이 가능하다.
환경, 산업안전, 의료, 교육 등 전통 분야에서 기업 활동에 대한 획일적이고 사전적인 규제는 물론이고,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우버택시, 에어비앤비 등 각종 신산업과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규제도 대부분 현행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법화되어 있다. 각종 고용 및 근로기준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규제 풍토에서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민간 경제활동의 뒷다리를 잡게 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 피동적으로 규정이나 지키면 된다는 풍조가 생기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억제된 하향평준화가 초래된다. 소수의 잠재적 범법자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단체기합을 받는 셈이다.
또, 민간 입장에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고통스러운 큰 원인은 규제의 절차와 기준이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결과가 예측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집행하는 공무원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관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은 관청에만 가면 이유 없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을 위축 시키는 요인이 된다. 역설적으로 되는 규제는 공무원을 안 만나도 되고, 안되는 규제는 장관이 압력을 가해도 안되도록 하면, 기업활동은 체감적으로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다.
3.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배경 : 규제만능주의의 확산
우리나라의 규제 품질이 이와 같이 고비용 저효율의 낮은 품질을 가지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규제만능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 정권의 출범과 입법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시장기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이런 추세가 더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 확산과 이에 따른 방역 강화가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의원입법이나 국회에 제안되어 있는 수 많은 법안들을 보면 규제만능주의와 관치계획경제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규제고,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보호 장벽들이다.
분배와 형평, 참여의 이름으로 각종 할당제, 의무제, 허가제와 같은 고강도의 규제가 여러 분야에서 계속 도입되고 강화되고 있다. 상징적 사례가 현 정부의 주택정책과 임대차보호 관련 법들이다. ‘공정경제 3법’이라는 규제법도 규제목적이 무엇인지, 규제수단은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정한지에 대한 고려 없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규제들이 대부분 비전문적 주장과 정치적 고려에 의해 도입되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효과, 준수부담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과 이념에 치우친 나머지 목적이 정당하므로 무슨 수단이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다.
4. 규제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공공선택이론에서는 규제의 도입과 변화 과정을 공익 증진을 위한 과정이라기 보다는 이익집단의 이해조정의 산물로 보고 있다. 중요하고 민감한 규제가 개혁의 대상이 될 때마다 온갖 이익집단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규제를 도입하는 정치권과 규제를 집행하는 관료조직도 하나의 이익집단일 뿐이다.
다원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될수록 조직화된 소수가 분산된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형태의 정부실패와 규제실패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시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규제의 신설 강화 과정에서 과학적 분석과 증거에 기반한 규제 시스템 설계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입법과 정책 결정 과정에 전문적 의견 수렴과 조직되지 못한 다수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