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의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이번 도발의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의 ‘빅 딜’을 시도하자,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명운을 건 무력 투쟁을 벌인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제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해 이스라엘인 1,400여 명이 살해당하고 220여 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섬멸을 즉각 선포해 가자 지구에 보복 공습을 시작하고 인질이 풀려날 때까지 물과 전기, 연료를 끊는 전면 봉쇄를 시행했다. 이어 분리 장벽 주변에 전력을 대거 배치하더니 27일 ‘두 번째 독립전쟁’을 천명하며 지상군 투입을 단행했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위기가 대두하고 양측 민간인 사상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으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의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1964년에 결성된 PLO는 여러 아랍 국가를 떠돌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자치 합의 및 이스라엘과 PLO의 상호 인준을 담았다. 이듬해 PLO가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협정에서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을 통한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음에도 이스라엘의 강경 우파는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짓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과잉 진압했으며 가자 지구를 봉쇄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에 맞서 협력하는 대신, 파타흐와 하마스로 분열해 정쟁에 몰두했다. 2006년 두 번째로 열린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파타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파타흐의 수장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새로운 총리를 독단적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후 서안 지역의 지배권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파타흐가, 가자 지구의 통제권은 하마스가 장악했다. 파타흐는 해외 원조금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로 악명 높고 반정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억압했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 세력을 서슴없이 감금하고 처형했다. 파타흐와 하마스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알아크사 홍수'라고 이름 짓고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내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스라엘로부터 지켜내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도발의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의 ‘빅 딜’을 시도하자,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명운을 건 무력 투쟁을 벌인 것이다. 역내 데탕트가 이뤄지면 하마스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파타흐가 팔레스타인 통치의 대표성과 정당성, 나아가 경제 이익까지 독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정 위기와 국내 젊은 세대의 빠른 인식 변화 등에 직면해 정권의 수호 전략으로서 획기적인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시행 중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역내 정세 안정, 특히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에 최대 걸림돌은 라이벌 이란이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맞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기를 바탕으로 시리아 내 숱한 친이란 민병대는 물론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역내 프록시 무장 조직을 후원하며 팽창주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맺는 조건으로 미국의 철통같은 방위 조약과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유화책을 요구했다. 이란 핵 도발과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는 동시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이자 수니파 대표국으로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조직은 하마스가 아닌 파타흐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다. 이에 따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위기 앞에서 하마스는 전례 없는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러한 계산에는 2022년 11월에 출범한 이스라엘 극우 연립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초강경 정책, 이스라엘 내 최악의 국론 분열도 들어있었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와 중동의 데탕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급히 현지를 찾아 긴장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전운은 가시지 않았다. 역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도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내면서 데탕트는 깨진 것이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이 지지 입장을 밝힌 대상은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마스의 무차별 폭력이 중동의 데탕트를 방해하려는 의도적 계산이라고 비난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수교 협상의 재개를 암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이번 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수교가 결렬되면 테러 조직과 이란의 팽창주의 정책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빅 딜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따라서 이번 무력 충돌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아랍-이스라엘 간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려는 미국의 중재와 역내 주요국의 움직임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2020년 8월 수니파 아랍 국가이자 파격적인 개혁 행보에 나서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국교를 수립해 기념비적인 데탕트를 이뤘다. 협정의 이름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한 뿌리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땄다.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 없이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은 없다는 아랍 세계의 오랜 금기를 깨뜨린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수단, 12월에는 모로코가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합의했다.
이번 분쟁이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하는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주변국 대부분은 혹시 모를 자국 내 반정부 움직임에 긴장하며 정권 생존을 지키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측면 지원하고 서안 지역의 일부 급진주의 집단이 하마스와 연대를 선언하며 반이스라엘 전선을 확산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적극 후원해 온 이란의 강경 보수파 지배 연합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불러온 심각한 경제 위기와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로 전쟁 개입이 부담스럽다. 이란 내에서 이어지는 민생고 항의 시위에는 지방 보수층과 저소득층이 적극 참여해 강경파의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는 이번 충돌 과정에서 가자 지구와 맞닿은 라파 국경을 열어 인도적 차원에서 아랍 형제인 팔레스타인 주민을 잠시라도 대피시키라는 이스라엘과 국제 사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권위주의 정권인데 팔레스타인 주민의 유입으로 혹시 모를 불안정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구하면서 하마스의 무장 대원만 전멸시키는 외과 수술식 작전에 기적적으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급진주의 세력은 소수라도 남게 된다. 나아가 이스라엘 군의 지상 작전을 지켜본 가자 지구의 청년 세대가 트라우마를 겪고 급진화되어 다시 복수를 조직하고, 이스라엘은 새로운 무장 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가자 지구를 향한 억압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 또다시 급진주의 추종 세력이 선제공격으로 도발하면 이스라엘이 맹렬한 기세로 보복 공습을 단행하는 악순환의 시나리오가 계속되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는 안보 포퓰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해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팔레스타인을 향한 초강경 정책을 펼친 극우 정부가 어떻게 국가 실패를 불러왔는지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이 갈망해 온 선거가 빨리 시행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파타흐와 하마스 간 갈등 일변도의 관성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정치적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의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이번 도발의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의 ‘빅 딜’을 시도하자,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명운을 건 무력 투쟁을 벌인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제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해 이스라엘인 1,400여 명이 살해당하고 220여 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섬멸을 즉각 선포해 가자 지구에 보복 공습을 시작하고 인질이 풀려날 때까지 물과 전기, 연료를 끊는 전면 봉쇄를 시행했다. 이어 분리 장벽 주변에 전력을 대거 배치하더니 27일 ‘두 번째 독립전쟁’을 천명하며 지상군 투입을 단행했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위기가 대두하고 양측 민간인 사상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으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주도권 경쟁 및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의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1964년에 결성된 PLO는 여러 아랍 국가를 떠돌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자치 합의 및 이스라엘과 PLO의 상호 인준을 담았다. 이듬해 PLO가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협정에서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을 통한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음에도 이스라엘의 강경 우파는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짓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과잉 진압했으며 가자 지구를 봉쇄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에 맞서 협력하는 대신, 파타흐와 하마스로 분열해 정쟁에 몰두했다. 2006년 두 번째로 열린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파타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파타흐의 수장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새로운 총리를 독단적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후 서안 지역의 지배권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파타흐가, 가자 지구의 통제권은 하마스가 장악했다. 파타흐는 해외 원조금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로 악명 높고 반정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억압했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 세력을 서슴없이 감금하고 처형했다. 파타흐와 하마스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알아크사 홍수'라고 이름 짓고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내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스라엘로부터 지켜내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도발의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의 ‘빅 딜’을 시도하자,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명운을 건 무력 투쟁을 벌인 것이다. 역내 데탕트가 이뤄지면 하마스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파타흐가 팔레스타인 통치의 대표성과 정당성, 나아가 경제 이익까지 독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정 위기와 국내 젊은 세대의 빠른 인식 변화 등에 직면해 정권의 수호 전략으로서 획기적인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시행 중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역내 정세 안정, 특히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에 최대 걸림돌은 라이벌 이란이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맞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기를 바탕으로 시리아 내 숱한 친이란 민병대는 물론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역내 프록시 무장 조직을 후원하며 팽창주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맺는 조건으로 미국의 철통같은 방위 조약과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유화책을 요구했다. 이란 핵 도발과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는 동시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이자 수니파 대표국으로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조직은 하마스가 아닌 파타흐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다. 이에 따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위기 앞에서 하마스는 전례 없는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러한 계산에는 2022년 11월에 출범한 이스라엘 극우 연립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초강경 정책, 이스라엘 내 최악의 국론 분열도 들어있었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와 중동의 데탕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급히 현지를 찾아 긴장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전운은 가시지 않았다. 역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도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내면서 데탕트는 깨진 것이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이 지지 입장을 밝힌 대상은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마스의 무차별 폭력이 중동의 데탕트를 방해하려는 의도적 계산이라고 비난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수교 협상의 재개를 암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이번 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수교가 결렬되면 테러 조직과 이란의 팽창주의 정책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빅 딜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따라서 이번 무력 충돌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아랍-이스라엘 간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려는 미국의 중재와 역내 주요국의 움직임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2020년 8월 수니파 아랍 국가이자 파격적인 개혁 행보에 나서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국교를 수립해 기념비적인 데탕트를 이뤘다. 협정의 이름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한 뿌리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땄다.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 없이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은 없다는 아랍 세계의 오랜 금기를 깨뜨린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수단, 12월에는 모로코가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합의했다.
이번 분쟁이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하는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주변국 대부분은 혹시 모를 자국 내 반정부 움직임에 긴장하며 정권 생존을 지키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측면 지원하고 서안 지역의 일부 급진주의 집단이 하마스와 연대를 선언하며 반이스라엘 전선을 확산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적극 후원해 온 이란의 강경 보수파 지배 연합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불러온 심각한 경제 위기와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로 전쟁 개입이 부담스럽다. 이란 내에서 이어지는 민생고 항의 시위에는 지방 보수층과 저소득층이 적극 참여해 강경파의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는 이번 충돌 과정에서 가자 지구와 맞닿은 라파 국경을 열어 인도적 차원에서 아랍 형제인 팔레스타인 주민을 잠시라도 대피시키라는 이스라엘과 국제 사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권위주의 정권인데 팔레스타인 주민의 유입으로 혹시 모를 불안정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구하면서 하마스의 무장 대원만 전멸시키는 외과 수술식 작전에 기적적으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급진주의 세력은 소수라도 남게 된다. 나아가 이스라엘 군의 지상 작전을 지켜본 가자 지구의 청년 세대가 트라우마를 겪고 급진화되어 다시 복수를 조직하고, 이스라엘은 새로운 무장 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가자 지구를 향한 억압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 또다시 급진주의 추종 세력이 선제공격으로 도발하면 이스라엘이 맹렬한 기세로 보복 공습을 단행하는 악순환의 시나리오가 계속되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는 안보 포퓰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해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팔레스타인을 향한 초강경 정책을 펼친 극우 정부가 어떻게 국가 실패를 불러왔는지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이 갈망해 온 선거가 빨리 시행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파타흐와 하마스 간 갈등 일변도의 관성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정치적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